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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기침체에서 회복 (1970~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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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3년 1차 오일 쇼크는 일본 경제 전체에 큰 타격을 주었습니다.

수많은 히트 제품을 만들어 내고 있었던 당사도 그 여파로 1974년도에는 다시 적자를 기록하고 무배당 되었습니다.

곧바로 경영 체제 강화하기 위해 토지를 매각하고 인원 감축을 중심으로 한 재건 계획에 착수했지만, 간신히 수주가 회복 흑자로 전환한 것은 1977년도였습니다. 당시 일본의 산업 구조는 중화학공업 등의 산업에서 하이테크 산업으로 크게 변화하는 시대의 흐름 속에 있었습니다.

당사도 실적면에서 힘든 시기가 있었지만, 시장이 기대하는 독자적인 신제품의 개발을 추진하는 것이 사명이라는 신념을 가지고 오히려 새로운 기술과 제품을 개발하는 손을 늦추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결과적으로는 경기 회복기로 향하면서 새로운 수요를 만들어, 실적 회복으로 이어졌습니다.

고성능이고 사용하기 쉬운 디자인이 뛰어난 제품의 시대로

시장이 다품종, 다기능을 지향하게 되면 새로운 기술을 재빨리 적용하여 기존 제품을 더욱 고기능화 하는 개발 작업이 적극적으로 이루어졌지만, 반면으로는 <사용성>과 <디자인> 등 소프트웨어 측면을 중요시하는 움직임도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정밀 계측 장비 분야에서도 예외는 아니었습니다.

기존 볼베어링 대신 당사의 에어 기술을 살린 에어 베어링을 채택하여 측정 장비의 내구성 향상과 함께 고정밀도를 실현하고, 이를 장기간 유지할 수 있도록 한 3차원 좌표 측정기 <자이작스 G> 시리즈를 1980년대에 개발했습니다.

에어베어링은 당사의 진원도 측정기에 기존에도 사용되고 있었으며, 볼베어링에 필요한 유지보수 및 교체 등 과제를 해결하여, 현장에서의 수고를 없앴습니다. 또한, 이 시리즈는 제10회 일본국제공작기계 전시회 (JIMTOF)에 처음으로 출품되어 호평을 받았습니다. 최첨단 하이테크 산업에서부터 화장품 등의 친숙한 제품까지 시장이 다양한 표면 거칠기 측정기 분야에서는 현장에서 간편하게 측정하고 싶다는 요청이 많아, 이에 대응하기 위하여 1984년 <핸디서프 E-10A>를 개발했습니다. 이것은 무게 1kg의 초소형 경량이며, 9V 건전지 2개로 작동하는 휴대용 타입으로 높은 평가를 받아 1984년 일본 경제산업성이 선정한 좋은 디자인 상품으로 인정되었습니다.

진원도 및 원통 형상 측정기는 1984년에 컴퓨터와 그래픽 디스플레이 프린터를 내장한 <론컴 50A>를 개발했습니다. 당사의 검출기 회전형 진원도 및 원통 형상 측정기는 품질과 성능, 비용 등 모든 면에서 어렵다고 하는 자동차 제조사의 요구에 대응할 수 있도록 개량해 왔으며, 이로 인하여 기술과 품질도 향상되었습니다.

1983년에 개발한 고정밀 디지털 측장 장치 <미니 액스>는 물결무늬식(moire fringe) 유리 스케일을 적용하고 있으며, 기계 가공 분야는 물론, VTR, 비디오 디스크, 반도체 관련 등 광범위하게 이용되고 있습니다. 이른바 경기 활황의 분위기를 타고 다시 내수가 확대되면서, 1989년에는 물결 스케일 공장을 츠치우라에 완성시켜 생산 능력을 3배로 끌어 올렸습니다.

3차원 좌표 측정기
<자이작스 G> 시리즈
표면 거칠기 형상 측정기
<핸디서프 E-10A>
진원도 및 원통 형상 측정기
<론컴 50A>
디지털 측장 장치
<미니 액스>

대량 생산과 비용 절감이라는 상충하는 소비자의 요구에 대응

1980년 초기의 기계식 슬라이싱 머신을 메카트로닉스(전자 제어)화한 내주 칼날식 슬라이싱 머신, 이듬해 6 인치에 대응하는 <S-LM-200>시리즈가 개발되자, 국내 경쟁사가 따라올 수 없는 경쟁력을 갖추게 되었고, 또한, 해외에서 꾸준한 영업 활동으로 정밀도의 장점이 해외 재료 제조사에서도 주목 받게 되었습니다.

시장에 출시하여 한 번 평가를 받은 제품에 대해서도 기술이 진보되어 고객의 요구가 고도화되고 다양화되는 가운데, 그에 대응하기 위한 제품 개발은 중단되지 않고 계속되었습니다. 이후, 슬라이싱 머신의 당사 세계 시장 점유율은 70~80%로 세계 최고 제조사로서의 지위를 확립했습니다.

반도체의 고집적화가 진행되면 칩의 크기도 증가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비용 절감의 요구도 높아집니다. 때문에 한 장의 웨이퍼에서 더 많은 칩을 얻기 위해 실리콘 웨이퍼가 직경이 커지게 되면서, 반도체 제조 장치에도 해당 기술이 필요하게 되었습니다. 또한 일반적으로 IC의 집적도가 올라가면 갈수록 더 편평한 웨이퍼가 필요하지만, 웨이퍼의 직경이 커질수록 편평도를 내는 것은 어렵습니다. 그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당사가 개발한 것이 1987년에 발표한 내주 칼날식 슬라이싱 머신<S-LM-500>입니다.

이것은 잉곳의 잘라낸 면을 평면 연삭 한 후 절단하는 <숫돌과 블레이드를 사용한 단면 연삭>이라는 새로운 개념이 국내외에서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습니다. 또한 조작성이 좋고, 단면 연삭을 통해 후처리 공정 등을 생략할 수 있기 때문에, 미래 웨이퍼의 제조 공정을 바꿀 가능성을 지닌 장비로 평가되었습니다. 슬라이싱 머신으로 얇게 절단한 웨이퍼도 공정 내에서 파편이 발생하면 생산성이 악화되는 원인이 됩니다. 때문에 웨이퍼 외주부를 모따기(chamfering)함으로써 파편을 방지하는 에지 그라인딩 머신<W-GM-2000B>를 1990년에 개발하여, 웨이퍼 제조의 생산성 향상에 기여했습니다.

그 후 다이싱 머신도 웨이퍼의 직경이 커짐에 따라, 그에 대응하기 위한 기종의 개발이 추진되었습니다. 1984년에는 웨이퍼상의 거리와 블레이드의 정렬까지도 자동화한 당사 최초의 풀 오토 웨이퍼 다이싱 머신<A-WD-3000A>를 개발했습니다. 그 후에도 경쟁 업체를 능가하는 고정밀도로 신뢰송 높은 기계 개발이 이어졌으며, 8인치에 대응하면서 6인치 대응 머신보다 소형이며 누구나 정확하고 빠르게 잘라낼 수 있는는 모든 점에서 타사 제품을 능가하는 제품으로 대히트가 되어 당사를 다이싱 머신의 No.1 업체로 끌어 올렸습니다.

슬라이싱 머신
<S-LM-500>
에지 그라인딩 머신
<W-GM-2000B>
풀 오토 웨이퍼 다이싱 머신
<A-WD-3000A>

1980년대 초반에는 민간 설비 투자의 성장이 견고했던 것을 바탕으로, 당사의 실적도 순조롭게 성장하였습니다. 특히 당시 성장을 거듭하던 전자, 자동차, 공작 기계 등의 각 제조사가 우리의 주요 고객이었던 것은 당사에게는 바람에 돛 단 듯 순조로워, 이 시기에 당사가 적극적인 설비 투자를 통해 내수 확대와 적극적으로 수출 확대를 추진하는 확대 균형 노선을 취하게 된 요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1984년도에는 매출액(단체) 284억 엔으로 창업 이래 최대 실적을 나타냈으며, 반도체 제조 장비의 매출은 전체의 60 %에 달했습니다.

수주 증가에 대응하기 위해 생산 시설을 확대하였으며, 1981년에는 츠치우라 공장 내에 3차원 좌표 측정기 전용 공장이 완성되었습니다. 1983년에는 하치오지 지역에 지상 4층 지하 1층, 연면적 8,100㎡ 클래스 1만의 크린룸을 갖춘 새로운 공장을 건설했습니다. 또한 1984 년에는 전반적인 이미지 향상을 도모하기 위해 본사 사옥 재건축 착공, 이듬해 3월에 5 층, 연면적 3,073㎡의 새로운 본사 사옥이 완성되었습니다.

사업의 확대 노선을 타고 신제품 개발도 활발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또한, 기술 개발의 속도가 가속화되고 지금까지 개발된 다양한 제품에도 개선과 새로운 발상과 기술을 더한 고성능 제품이 요구되기 시작했습니다. 이처럼 당사의 사업은 호조였지만, 무역 마찰 문제와 국가의 재정 긴축 등의 정책으로 내수는 하향세였으며, 해외와의 거래를 확대하고 있었던 당사에게도 예측 불허의 상황이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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